운동하는 사람

우리의 게으름과 나태함이 맺어준 열매인 산업화, 자동화, 그리고 전산화 시대가 베풀어(?) 놓은 풍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우리는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같은 시간 속에서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더 많은 일을 처리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시공간의 제약, 그리고 유한한 육신의 한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단위시간당 훨씬 많은 생산력을 확보했다 한들, 여전히 내 몸뚱아리를 일정 시간 이상씩 사용 해 줘야 한다. 마치 세상이 아무리 발전한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먹어야 살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노동이 일반이었던 세대 속에선 없던 ‘헬스장’ 이라는게 생겨있으며, (‘헬스 트레이너’ 마저도), 우리는 우리의 게으른 욕구를 꺾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몸을 쓰는 일에 투자를 해야만 어느정도 수준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삶의 방식만 조금 달라졌을 뿐, 제한된 시공간과 육신의 한계 속에서는 어찌되었던 몸뚱아리를 움직이고 사용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운동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도 운동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필요함을 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정말로 땀을 흘리고 수고를 해야만 하도록 설계되어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탄탄한 몸매와 근력, 그리고 땀흘리고 수고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 마치 밥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 꼭 투자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좌파적 가치관을 가지지 않은 사람

좌파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이중적인 사고방식, 이중적인 삶의 방식, 그리고 이중적인 잣대를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좌파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은, 본인 그리고 본인과 뜻을 같이하는 집단의 의견과 판단이 정의롭고 공의롭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무엇보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그러한 줄을 모른다는 거다. 좌파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비판적 생각을 펼쳐가다 보면, 결국엔 죄인인 인간, 죄인인 나의 모습이 보이지만, 스스로가 그러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좌로나 우로나 감히 치우칠 수 없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내려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

성경적 이성관을 가진 사람

흔히들 남녀문제는 둘만 안다 – 라던가, 둘만이 해결할 수 있다 – 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일’ 혹은 ‘그들의 문제’ 나아가선 ‘다른사람이 감히 신경써선 안될 일’ 이라는 인식이 세상의 경험이 낳은 지혜인듯 하다. 그만큼 워낙 각 사람의 소견대로 만나고, 그들의 소견 속에서 교제하며 일들을 풀어가고, 그들의 소견을 따라 지속적인 만남과 헤어짐의 여부도 정해진다는 말인 듯 하다. 정말이지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도 나누어 보면, 정말 이성관에 대한 생각이 중구난방이고, 각자의 삶의 경험에 기초한 소견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성관에 있어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건, 성경이 말하고 보여주고 요구하고 있는 이성관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남자와 여자에 대해 성경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 만남과 사랑과 섬김과 헌신에 대해 성경적으로 풀어가려 노력하는 사람. 남편과 아내, 결혼과 가정, 그리고 부모와 자녀에 대해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풀어가길 원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고마움을 아는 사람

미안함을 아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