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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Thinking (page 3 of 44)

하나님, 너무 고통스러워요.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나지지가 않아요.

주님, 어떠한 상황으로 또 어떠한 모습으로 제 삶을 인도하셔도 그에 순종하고픈게 저의 본심이고 고백이지만, 그와 동시에 저는 그럴 수 없는 존재라는 것 또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를 뒷받힘하는 많은 증거들이 제 삶에 널려있습니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주세요. 저를 시험에 들게 마시고, 악에서 구해주세요. 주님의 긍휼과 인자와 자비를 간절히 구합니다.

망가짐이 많은 인생

이미 무책임한 사람이 짓밟아 놓은 인생이라
또 다른 하나가 그렇게 책임 없이 떠나며 내 심장과 인생에 흠집 낸들
별로 티 나지도 않겠지만,

살면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건네줄 수 있던, 그러려 아껴두었던 나란 인생에서의 ‘처음 소산물’은 점점 사라져가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망 없이 미움 없이
오뚝이 처럼 회복해서
또 사랑할꺼다.

이전보다 더 깊은 설움이 묻어있겠지만
그만큼 더 깊이 있는 사랑을 해줄꺼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크리스쳔’ 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는 것 같다.

가만보면 막장의 끝을 달리던 사사기 시대도 결국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크리스쳔’ 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 아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수많은 파괴적이고 무책임한 선택들.

사사기에 적나라하게 쓰여있듯, 그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돌이켜지지 않을꺼다. 그들 자신을 직시하지도 못할꺼다. 사사기는 무섭게도 결말이 없는 책이다. 그냥 그렇게 막장으로 쭉 산다고 여운을 남기며 끝낸다.

하나님은 쏙 빼놓고 껍데기 신앙만 하는 크리스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크리스쳔,
책임보단 본인의 감정이 사랑의 척도가 되는 크리스쳔,
여전히 같이 호흡해야하고,
사랑하며 고통받아야 한다.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 처럼.

그나마 다행인 건,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거.
모든 것을 심판하실 거라는 거.

나도 또 그렇게 심판받겠지.

크리스천 라디오를 듣는데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떠나는 일도 우리 인생사에 비일비재 하다는 걸 생각해 보게 되었다. 끝까지 서로의 인생에 책임 있는 선택을 하며 살고싶지만, 그게 맘처럼 되지 않기도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죄로 물들고 망가져 병들어있는 이 땅에서의 삶은 고통을 누리기에 충분한 것 같다.

신실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만 바라며 사는 길 밖엔 없네.

묘비문

End of Construction – Thanks for your patience!
공사 끝 – 인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빌리 그래험 목사님의 말이고, 그분의 아내 룻 그래험 사모님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공사중인 나. 성숙하지 못한 나.
인내를 요구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나.
나도 안다.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정말 살아있는 동안,
그렇게 겸손한 마음으로,
또 날 인내해주는 이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고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공사중인 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고 견디지 못한 채 떠나버렸다.

한 기자가 룻 그래험 사모님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빌리 그래험 목사님과 사시면서, 이혼을 생각해 보신 적은 없나요?”

룻 그래험 사모님의 대답은 이러햇다.
“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기자는 놀라운 표정이었다.

“살인 충동을 느낀 적은 여럿 이었죠. 하하.”

모두가 폭소했다.

수만명의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던 복음주의자인 빌리 그래험 목사님.
그도 한 인간, 한 남편으로는 한 없이 초라하고, 흠결 많고, 또 아내에게 상처주고, 아내를 분노케 하는 ‘공사중인 사람’ 일 뿐이었구나, 하는 사실이 나같은 실패자에게 위로가 된다.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관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연의 모습으로 우리 삶을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내게 또 한번의 기회를 허락 해 주실지,
아님 앞으로 어떻게 인도되고 허락될지 모르겠다. 두렵고.

마지막으로 룻 그래험 사모님을 인용하며 기도가 담긴 글을 마치려 한다.

A happy marriage is the union of two good forgivers.
행복한 결혼은, 두명의 좋은 용서자의 연합입니다.

내가 ‘a good forgiver’ 가 되지 못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결론 없는 생각만 많다.

내팽겨침 당하는 내 인생.
소중한 누군가의 인생마저 내팽겨침 당하도록 만드는 도구로 사용된 인생.

다시 마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끌려내려지다 시피 한 작년, 귀국결정.
다시 마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끌려내려지다 시피 한 올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인간적인 원인, 나의 실수도 물론 있겠지마는..

아, 하나님.
살아있는다는게 그저 주의 노여움만 일으킬 뿐인 저를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겨주세요.

여호와가 아니고서는 허무해지지 않을 일이 없습니다.
나의 죄악됨을 주님 앞에서 숨길 것이 없사오니,
나로 하여금 작은 것들마저 깨닫게 하시고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사
노여움을 거둬주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가슴에 구멍이 난 것 처럼 힘겹고 고통스럽다.
멍울 처럼 맺힌 슬픔은 좀처럼 가실 생각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난 안다,
고통을 벗어나려 하는 노력도 다 허사라는 걸.
결국 더 큰 허무와 고통으로 되돌아 올거라는 걸.

고통아,
네게 허락된 만큼 맘껏 누벼라.
발버둥 치지 않을테니.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시25:11)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25:16)

하나님,
까닭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티끌 같은 저의 인생,
주의 크심 다 알 길이 없네요.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이런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실패하기만 하는 저의 인생..
쓸모 없어 보이는 저의 인생..
긍휼히 여겨주세요..

하나님의 긍휼하심 없이는
허무함으로 소멸되기만 할 뿐인 인생입니다..

사는 것도 내맘대로 된게 아니지만
또 죽는것도 내맘대로 할 수 없는 인생.
사는 날 동안은 여호와의 진노 중에 순식간에 지나가는 인생.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9-10)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시90:13-16)

아, 정말 고통스럽다.
여호와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연애와 결혼, 무엇을 해도 불투명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 www.christiantoday.co.kr/news/314697

삶에 지쳐 공허함 가운데 허우적 대며
꿈도 희망도 모두 잊은 채 살아가고 있을 때
내 어릴 적 작은 소망 기억하시고 이뤄주시니
대체 내가 무엇이관대 그러시나
먹먹한 마음으로 쳐다만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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